가을의 백두대간 가을빛이 머물던날, 김천 황악산

 

김천 황악산 단풍

가을의 끝자락이 바람에 실려 오던 날, 김천 황악산으로 향했다.

일교차가 뚜렷한 시기였지만, 하늘은 맑게 개어 있었고 햇살은 마치 초가을처럼 따스했다. 산 아래에 도착했을 때, 이른 아침의 공기 속에 남아 있는 차가운 기운이 오히려 산행의 첫걸음을 더 가볍게 만들어주었다.

황악산 정상에서

산문을 지나자마자 탁 트인 하늘 아래로 황악산 능선이 길게 드러났다. 아직 남아 있는 단풍이 바람에 흔들리며 반짝였고, 초입의 길에는 어제 떨어진 낙엽들이 두껍게 쌓여 조용한 소리를 내며 발밑에서 스며들었다.

걷는 동안 주변이 유난히 고요했다. 숲 사이로 스며오는 빛이 부드럽게 드리워지고,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길은 계절의 마무리를 차분히 받아들이는 듯했다. 진하게 물든 붉은 단풍 아래를 지날 땐, 잠시 발걸음을 늦추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이 마지막으로 남긴 색감이 산 전체를 감싸고 있었기 때문이다.

낙옆길

능선을 향해 오르는 동안 낙엽이 길 위에 깊게 깔려 있었고, 바람이 스칠 때마다 사락거리는 소리가 귓가를 채웠다. 황악산 특유의 너른 풍경이 시야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산이 가진 단단한 결이 천천히 드러났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바람의 결이 크게 바뀌었다. 사방이 열리며 김천 시내와 멀리 이어지는 산맥의 흐름이 한눈에 펼쳐졌다. 파란 하늘 아래 겹겹이 포개진 산들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듯 묵묵하고 고요했다.
잠시 숨을 고르며 서 있을 때, 지나온 길이 선명하게 떠올랐고, 그 위에 겹겹이 쌓여 있던 작은 생각들도 바람에 날아가는 듯 가벼워졌다.

황악산 트레킹

하산길은 황악산의 또 다른 얼굴이었다. 계절이 지나간 숲은 더 말갛고 단정해 보였고, 마른 풀잎 사이로 난 좁은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막차처럼 아직 남아 있는 가을의 여운이 손끝에서 느껴졌다. 바람이 흔드는 가지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길 위에 조용히 드리워지고, 그 위로 햇빛이 고르게 흘러내렸다.

산 아래에 다시 도착했을 때, 한낮의 햇살이 숲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아침의 차가웠던 공기는 온데간데없고, 부드러운 따스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짧지 않은 길이었지만, 황악산의 능선과 숲길은 하루를 충분히 채울 만큼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번 길은 계절의 끝에서 만난 조용한 위로 같은 시간이었다.
백두대간의 흐름을 따라 이어지는 다음 산이 어떤 풍경을 보여줄지, 벌써 마음이 조금 설레고 있었다.